법정관리 신청 사상최대… 법원은 요즘 매일 북새통
등록일 201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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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명 KPC
"채권 번호 128번입니다. 저는 채무자 회사 A사에서 하도급을 받는 건설업체인데요. 전체 금액 중에 사장님이 인건비라고 약속한 부분이 있습니다. 3분의 1 정도입니다. 그런데 회생안을 보니 인건비라고 약속한 부분이 빠져 있더라고요."(건설회사인 A개발의 하도급 기업 B사의 사장)
"그 부분이 저희 회생안을 보면 chr(39)노임(勞賃) 채권chr(39)이 아니고 chr(39)회생 채권chr(39)으로 되어 있을 겁니다. 법정관리로 들어오면서 법원에서 그렇게 정리를 하신 것 같은데요."(A사 사장 겸 법정관리인)
"사장님이 얼마 전에 서명하신 문서가 여기 있는데요. 채권 4억4000만원 중에 1억4800만원이 임금이라고, 여기 분명히 쓰여 있지 않습니까?"(B사 사장)
지난 13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제3별관 2층 1호 법정에서 열린 chr(39)A개발 법인 회생에 대한 제2회 관계인 집회chr(39) 현장. 지난 4월 법정관리(공식 명칭은 chr(39)법인회생 절차chr(39))를 신청해 절차가 진행 중인 A개발 사장과 하도급 업체인 B사의 사장 사이에 공방이 붙었다. A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주가 줄어들면서 수백억원의 영업 손실이 발생하고 부채가 급증해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 회사는 채무 조정 등을 통해 회사를 살리는 안을 만들어 법원에 제출했고, 이날은 채권자 등 관계자들이 모여 이 방안을 심사하고 표결에 부쳐 승인할지 결정하는 중요한 날이었다.
강당처럼 생긴 법정에 약 200명의 채권자가 모였다. 법정 앞엔 3명의 판사와 A개발 사장, 채권단 대표인 한 은행의 담당자, 회계사인 조사위원, 채권단이 추천해 선임된 A개발의 구조조정임원(CRO•Chief Restructuring Officer)이 앉아 있었다. A사가 갚아야 할 돈은 약 3200억원. 그런데 회사 측 안은 chr(39)담보 채무는 60~100%, 무담보 채무는 16~31%를 10년 동안 현금으로 갚고, 나머지는 출자 전환(채권을 주식으로 바꾸는 것)한다chr(39)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chr(39)기업의 중환자실chr(39)이라고 불린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회사 중에 채권자가 빚을 깎아주고 살리기로 결정한 회사는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되고, 도저히 되살아날 가능성이 없으면 파산 절차를 밟게 된다. 전국에서 법정관리•파산 절차를 가장 많이 처리하는 곳이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다. 과거 6명에 불과하던 파산부 판사가 현재 26명으로 늘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은 2006년 19곳이던 것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크게 늘어 2008년에 111건, 2009년에 193건을 기록했다. 2010~2011년에는 주춤했는데, 올해 다시 크게 늘어 11월까지 236건에 달해 이미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현재 서울지방법원에서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기업은 총 210여개. 이들 기업의 총자산은 약 17조원에 달한다. 만일 이 기업들이 하나의 그룹이라고 가정하면 재계 15위(민간 기업 기준) 수준이 되는 셈이다. 김희중 판사는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기업의 재정적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경영인들 사이에 법정관리 절차가 많이 알려져 신청이 느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날의 재판은 chr(39)관계인집회chr(39)라고 불리는데, 참석한 채권자 누구나 손을 들고 연단에 나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다. B사 사장은 이날 발언한 7명 중 한 사람이다. B사 사장이 말한 chr(39)노임 채권chr(39)이란 기업 회생 절차에서 우선으로 변제받을 수 있는 chr(39)공익 채권chr(39)에 들어간다. 공익 채권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채권의 31%를 10년에 걸쳐 나눠 받고, 나머지 69%는 주식으로 전환되므로 채권자 입장에선 불리하다. 공방이 이어지자 이종석 수석부장판사가 상황 정리에 나섰다. "노임 채권인지 아닌지는 법률적으로 판단할 문제이며, 관리인이 인정한다고 해서 노임 채권이 아닌 것이 노임 채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관리인께서는 필요한 자료를 최대한 빨리 저희에게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발언이 끝난 뒤 표결이 진행됐다. 참석한 채권자 200여명의 채권 번호와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회사 측의 회생 계획안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었다.
"지금부터 회생 계획안에 대한 의결권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동의하시는 분은 chr(39)찬성chr(39), 부동의하면 chr(39)반대chr(39)라고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결되기 위해서는 담보권자의 4분의 3 이상, 채권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의결권은 보유한 채권의 금액에 따라 결정된다. 담보권자는 은행 3곳으로 모두가 chr(39)찬성chr(39)이었지만, 하도급 업체가 많은 채권자 사이에선 의견이 갈렸다. "순번 33번 C철강" "찬성합니다" "141번 D전기" "찬성합니다" "798번 E특수개발" "반대입니다"…. 참가하지 않은 채권자는 반대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표결 절차에만 약 40분이 걸렸다.
이날 회생 계획안은 채권자의 67.5%가 찬성해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 가결이 확정되자 한 하도급 업체에서 나왔다는 40대 여성 채권자가 손을 들고 일어섰다. "천만다행으로 생각합니다. 하루 먹고 살기 어려운데도 여기까지 나오신 분도 많은데, 관리인께서는 약속한 대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시면서 열심히 회생하기 위해 노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재판장인 이종석 판사가 회생 계획안 인가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법원의 파산부는 사회와 시장이 chr(39)실패chr(39)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와 연관돼 있다. 선진국일수록, 그리고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강조하는 사회일수록, 실패를 제대로 처리해 재기의 기회를 준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법정관리
기업이 빚을 갚지 못하거나 파산할 우려가 있을 때 법원이 채권자•주주 등과 법률 관계를 조정해 기업을 되살리는 절차로 공식 명칭은 ‘법인 회생 절차’이다. 사업을 청산하는 것이 계속하는 것보다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엔 파산이 선고돼 남은 자산을 채권자•주주가 나눠 갖게 된다.
조선일보 김신영기자 2012.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