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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살리느냐, 죽이느냐" 21세기 솔로몬의 고민

등록일 2012-12-26

조회 11,435

등록자명 KPC

지난 11월 서울에서 열린 기업 구조조정 관련 국제 심포지엄에서 중국의 한 변호사가 말했다. "외국인 사장들은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잘 풀리지 않으면 몰래 도주해 버립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는 건지 화가 납니다." 일본의 한 파산 전문 학자가 되물었다. "그렇다면 중국에선 사업에 실패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실패한 기업을 처리하는 적법한 절차가 있습니까." 중국 변호사는 "사실 아직 잘 정비가 되어 있지 않고, 우리도 그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당시 심포지엄에 참가했던 서울중앙지법 이종석 파산수석부장판사는 "법인 회생(법정관리)과 파산 절차가 법 안에서 이뤄지지 않으면 실패한 기업의 사장에겐 채권자들을 피해 도망가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서 "기업의 실패를 법적인 틀 안에서 얼마나 공정하게 해결하는지는 시장이 얼마나 성숙한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라고 말했다.

◇혁신과 도전정신엔 chr(39)실패할 수도 있다chr(39)는 전제가 필요

한국의 가장 큰 파산부인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최근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유명세를 탔다. 법정관리 신청 건수가 올해 사상 최다를 기록하자 일각에선 파산부를 chr(39)면죄부 발급소chr(39)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파산법정의 철학과 운영 원칙은 무엇일까?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의 이종석 파산수석부장판사와 정준영 부장판사, 구회근 부장판사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파산수석부장판사실에서 만나 들어봤다.

―기업이 실패할 때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경영진에게 있는 것 아닌가. 왜 법원이 빚을 조정해 줘야 하나.

이종석(이하 chr(39)이chr(39))=망한 기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사회가 chr(39)실패chr(39)를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다. 개인 차원에서는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이 부분을 담당한다. 그런데 기업 차원에서는 법인 회생과 파산이 실패를 담당하는 것이다. 가장(家長)이 빚을 많이 져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다고 치자. 집을 나가서 노숙자가 되거나 심하면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해결책은 빚을 적절히 조정해 줘서 경제활동을 지속하고, 오래 걸리더라도 빚을 어느 정도 갚도록 해 가정을 유지하게 하는 것 아닐까.

정준영(이하 chr(39)정chr(39))=우리 법원의 다른 판사들 중에도 파산부가 하는 일이 어색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계약을 했으면 계약을 지켜야지, 마음대로 떼어먹으려고 하느냐"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파산부에 오는 기업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계약을 이행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파산은 철학의 문제라고 본다. 창의성, 혁신, 도전정신을 높이 쳐주는 사회라면, 이 같은 가치에 chr(39)실패할 수도 있다chr(39)라는 전제 조건이 포함돼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기업을 제때 망하게 하는 것도 경영인의 책임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할지, 파산을 시킬지는 어떻게 판단하나.

정=경제성의 원칙에 따른다. 계속 기업 가치, 즉 회사를 살려두어서 경제 활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 회사를 매각했을 때의 가치를 넘어선다면 회사를 되살려서 영업을 하게 만든다. 그것이 법인 회생(법정관리)이다. 회생 절차를 밟으려면 적어도 영업 비용만큼의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회사의 자산을 매각해서 채권자들에게 적절히 배분하는 파산 절차를 밟게 된다. 권리 순위에 따라서 얼마나 신속하고 공정하게 기업을 정리하는가의 문제는 국가 신인도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다.

구회근(이하 chr(39)구chr(39))=체면 때문에 끝까지 버티다가 기업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로 법원에 오는 경우를 볼 때 매우 안타깝다. 6개월 동안 임금이 체불될 정도로 경영 상황이 악화한 회사를 어떻게 되살리나. 자구(自救) 노력만으로 안 되는 일이 분명히 있다. 기업을 제때 망하게 하는 것도 경영인의 사회적 책임이다.

―법인 회생이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많다.

이=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것 자체가 경영인의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에는 동의할 수 없다. 기업가 입장에서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한마디로 chr(39)망했다chr(39)고 인정하는 셈이고, 다 내놓아야 한다. 현금 빚은 줄어들더라도 채권자의 채권을 주식으로 바꿔주며, 대주주의 주식은 소각해서 회사를 채권자에게 넘기게 된다. 또 채권자들이 추천한 구조조정 임원이 직원들 식대 나간 것 하나까지 다 들여다본다.

정=미국 도산법 권위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하버드대 법대 교수의 책 chr(39)미국의 기업회생 제도chr(39)에 나오는 첫 문장을 늘 되새긴다. chr(39)기업은 망할 수도 있다(Businesses fail)chr(39)는 것이다. 중국 그리고 과거의 한국같이 기업을 실패하지 못하게 하고 공적 자금을 투입해 연명시킬 수도 있지만, 망할 기업을 제때 제대로 망하지 못하게 하면 시장이 망가지고, 결국은 나라가 망가지게 된다.

◇"경영권 유지, 채권단이 동의해야"

―법정관리 기업의 경영진이 chr(39)기존관리인유지(DIP)chr(39) 제도를 악용해 경영권을 유지한다는 비판이 많은데.

정=기존관리인유지 제도의 취지는 회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기존 경영인이 기업의 회생 절차를 맡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이 이미 오래전부터 도입하고 있다. 부작용을 막기 위해 기업의 재정적 파탄이 경영인의 재산 유용, 은닉, 부실 경영 때문이거나 채권자들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엔 기존 경영인을 선임할 수 없도록 한 견제 장치가 있다. 웅진홀딩스의 경우 채권자협의회의 요청에 따라 윤석금 회장이 결국 관리인을 맡지 못했다. 법인 회생 절차는 법원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과정에서 까다로운 표결 절차를 걸치고, 이 과정에서 채권자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차를 진행할 수가 없다.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여년 동안 파산법정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나.

이=지난해 3월 도입한 chr(39)패스트트랙(fast track)chr(39) 회생 절차가 가장 대표적인 변화다. 채무 조정을 최대한 빨리, 될 수 있으면 6개월 안에 마무리해 기업을 시장으로 복귀시키자는 취지로 도입했다. 이전에는 일단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오면 적어도 10년 동안은 법원의 관리 아래 있었다. 그동안은 chr(39)법정관리 기업chr(39)이라는 낙인 탓에 투자를 받거나 계약을 따내기가 매우 어려웠다.

구=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으며 법인 회생, 파산, 워크아웃 제도가 크게 발전했다. 외환위기 이후 많은 판사가 미국에 가서 도산법을 공부해 왔고, 파산 제도도 정비돼 부실한 기업을 솎아내서 정리하는 일이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한국이 완전히 쓰러지지 않게 한 숨은 동력에는, 지난 10년 동안 작동해 온 파산 제도가 포함돼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일보 김신영기자 2012.12.24. 
법정관리 신청 사상최대… 법원은 요즘 매일 북새통

"채권 번호 128번입니다. 저는 채무자 회사 A사에서 하도급을 받는 건설업체인데요. 전체 금액 중에 사장님이 인건비라고 약속한 부분이 있습니다. 3분의 1 정도입니다. 그런데 회생안을 보니 인건비라고 약속한 부분이 빠져 있더라고요."(건설회사인 A개발의 하도급 기업 B사의 사장)

"그 부분이 저희 회생안을 보면 chr(39)노임(勞賃) 채권chr(39)이 아니고 chr(39)회생 채권chr(39)으로 되어 있을 겁니다. 법정관리로 들어오면서 법원에서 그렇게 정리를 하신 것 같은데요."(A사 사장 겸 법정관리인)

"사장님이 얼마 전에 서명하신 문서가 여기 있는데요. 채권 4억4000만원 중에 1억4800만원이 임금이라고, 여기 분명히 쓰여 있지 않습니까?"(B사 사장)

지난 13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제3별관 2층 1호 법정에서 열린 chr(39)A개발 법인 회생에 대한 제2회 관계인 집회chr(39) 현장. 지난 4월 법정관리(공식 명칭은 chr(39)법인회생 절차chr(39))를 신청해 절차가 진행 중인 A개발 사장과 하도급 업체인 B사의 사장 사이에 공방이 붙었다. A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주가 줄어들면서 수백억원의 영업 손실이 발생하고 부채가 급증해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 회사는 채무 조정 등을 통해 회사를 살리는 안을 만들어 법원에 제출했고, 이날은 채권자 등 관계자들이 모여 이 방안을 심사하고 표결에 부쳐 승인할지 결정하는 중요한 날이었다.

강당처럼 생긴 법정에 약 200명의 채권자가 모였다. 법정 앞엔 3명의 판사와 A개발 사장, 채권단 대표인 한 은행의 담당자, 회계사인 조사위원, 채권단이 추천해 선임된 A개발의 구조조정임원(CRO•Chief Restructuring Officer)이 앉아 있었다. A사가 갚아야 할 돈은 약 3200억원. 그런데 회사 측 안은 chr(39)담보 채무는 60~100%, 무담보 채무는 16~31%를 10년 동안 현금으로 갚고, 나머지는 출자 전환(채권을 주식으로 바꾸는 것)한다chr(39)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chr(39)기업의 중환자실chr(39)이라고 불린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회사 중에 채권자가 빚을 깎아주고 살리기로 결정한 회사는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되고, 도저히 되살아날 가능성이 없으면 파산 절차를 밟게 된다. 전국에서 법정관리•파산 절차를 가장 많이 처리하는 곳이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다. 과거 6명에 불과하던 파산부 판사가 현재 26명으로 늘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은 2006년 19곳이던 것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크게 늘어 2008년에 111건, 2009년에 193건을 기록했다. 2010~2011년에는 주춤했는데, 올해 다시 크게 늘어 11월까지 236건에 달해 이미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현재 서울지방법원에서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기업은 총 210여개. 이들 기업의 총자산은 약 17조원에 달한다. 만일 이 기업들이 하나의 그룹이라고 가정하면 재계 15위(민간 기업 기준) 수준이 되는 셈이다. 김희중 판사는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기업의 재정적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경영인들 사이에 법정관리 절차가 많이 알려져 신청이 느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날의 재판은 chr(39)관계인집회chr(39)라고 불리는데, 참석한 채권자 누구나 손을 들고 연단에 나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다. B사 사장은 이날 발언한 7명 중 한 사람이다. B사 사장이 말한 chr(39)노임 채권chr(39)이란 기업 회생 절차에서 우선으로 변제받을 수 있는 chr(39)공익 채권chr(39)에 들어간다. 공익 채권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채권의 31%를 10년에 걸쳐 나눠 받고, 나머지 69%는 주식으로 전환되므로 채권자 입장에선 불리하다. 공방이 이어지자 이종석 수석부장판사가 상황 정리에 나섰다. "노임 채권인지 아닌지는 법률적으로 판단할 문제이며, 관리인이 인정한다고 해서 노임 채권이 아닌 것이 노임 채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관리인께서는 필요한 자료를 최대한 빨리 저희에게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발언이 끝난 뒤 표결이 진행됐다. 참석한 채권자 200여명의 채권 번호와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회사 측의 회생 계획안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었다.

"지금부터 회생 계획안에 대한 의결권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동의하시는 분은 chr(39)찬성chr(39), 부동의하면 chr(39)반대chr(39)라고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결되기 위해서는 담보권자의 4분의 3 이상, 채권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의결권은 보유한 채권의 금액에 따라 결정된다. 담보권자는 은행 3곳으로 모두가 chr(39)찬성chr(39)이었지만, 하도급 업체가 많은 채권자 사이에선 의견이 갈렸다. "순번 33번 C철강" "찬성합니다" "141번 D전기" "찬성합니다" "798번 E특수개발" "반대입니다"…. 참가하지 않은 채권자는 반대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표결 절차에만 약 40분이 걸렸다.

이날 회생 계획안은 채권자의 67.5%가 찬성해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 가결이 확정되자 한 하도급 업체에서 나왔다는 40대 여성 채권자가 손을 들고 일어섰다. "천만다행으로 생각합니다. 하루 먹고 살기 어려운데도 여기까지 나오신 분도 많은데, 관리인께서는 약속한 대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시면서 열심히 회생하기 위해 노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재판장인 이종석 판사가 회생 계획안 인가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법원의 파산부는 사회와 시장이 chr(39)실패chr(39)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와 연관돼 있다. 선진국일수록, 그리고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강조하는 사회일수록, 실패를 제대로 처리해 재기의 기회를 준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법정관리

기업이 빚을 갚지 못하거나 파산할 우려가 있을 때 법원이 채권자•주주 등과 법률 관계를 조정해 기업을 되살리는 절차로 공식 명칭은 ‘법인 회생 절차’이다. 사업을 청산하는 것이 계속하는 것보다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엔 파산이 선고돼 남은 자산을 채권자•주주가 나눠 갖게 된다.

조선일보 김신영기자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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