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사람과 기업의 재활용
등록일 2011-04-25
조회 13,297
등록자명 KPC
최근 광주지법 파산부의 선재성 수석부장판사가 친형 학교동창 나아가 자신의 운전기사까지 법정관리인 또는 감사로 선임하는 사건이 발생해서 여론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대법원이 일정 수준의 전문 교육을 받은 유자격자를 법정관리인으로 선임토록 하는 제도개선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법정관리인 양성기관이나 교육이수자들이 자신들의 존재감이 부각됐다며 반기고 있음은 역설적입니다.
법정관리인 제도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였습니다. 1962년에 일본의 법을 베낀 수준의 회사정리법 화의법 파산법을 제정했으나 유명무실한 채로 운영돼 오다가 외환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한국생산성본부(KPC) 전경련 경영자총협회 등이 법정관리인 교육과정을 설치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습니다.
기업 부도가 줄을 이었으나 관련 법에 관한 이론 연구도, 제도운영 경험도 없었던 터라 부도기업 처리절차에 숱한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그때 그때 운영경험을 법에 반영하는 땜질식 법 개정으로 버텨 오다 2006년 4월 3개 법률을 통합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습니다.
이 같은 도산관련법의 미비로 인해 채권단의 희생이 커지자 채권은행 주도로 2001년에 대안을 내놨습니다. 법정관리에 맡기기보다 채권은행들이 사전에 부실기업을 가려내 관리하자는 기업구조조정촉진특별법(워크아웃법)이 그것입니다. 한시법이었던 워크아웃법은 한 차례 연장을 거쳐 2010년 말로 폐지됐으나 최근 건설사들의 부도가 잇따르자 재 연장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통합도산법이 시행된 후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제도개선을 통해 기업의 회생기회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부실경영책임이 매우 크지 않은 구 사주의 경영권을 법이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올 들어서는 여기에 워크아웃법의 폐지 여파가 가세하면서 법정관리신청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LIG건설 삼부토건과 같은 견실한 중견 건설업체의 부도가 그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기업주의 입장에선 법원에 도산법의 운영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법정관리가 워크아웃보다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했을법합니다.
금융업은 원리금에 바탕한 냉혹한 세계지만 법에는 때로 눈물도 있습니다. 법정관리를 맡은 판사들 중엔 경영마인드를 갖춘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판사들도 최상의 법정관리는 법률지식이 아니라 기업을 회생시키는 것임을 알게 된 때문입니다.
올 들어 생산성본부 등 법정관리인 양성기관에 수강신청자들이 쇄도, 즐거운 비명입니다. 생산성본부의 경우 60명 정원에 318명이 지원해 5대1이 넘는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3개월 수강료만 200만원이 넘는 과정인데 이렇게 지원자가 몰리는 것은 외환위기 때를 능가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법정관리인 지망자가 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경기여파로 실직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울러 앞으로 부도기업이 많아져 관리인 선임의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있을 것이고, 현직자들이 많은 것은 실직의 불안감 때문일 것입니다.
법정관리제도는 기업으로나 사람으로나 일종의 재활용(리사이클링)입니다. 인재양성사업이 가장 활발한 생산성본부의 경우 10여년 사이에 배출 인원이 1,500명에 육박합니다. 다른 기관의 이수자를 포함하면 3,000명이 넘습니다. 이수자들은 대개 각종 제조업, 건설업, 금융 등 서비스업체의 임원급 이상의 경력자들입니다. 우리 사회가 재활용해야 할 고급 인력 풀입니다.
부도기업이 많아지고, 실직자가 늘어나는 것은 분명 어두운 면입니다만 현직 때의 경험을 살려 부도 기업을 회생시키는 일에서 보람을 찾겠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교육 수료자 중에서 관리인이나 감사에 선임되는 비율은 아직은 10%대에 불과한 점입니다. 광주지법의 경우 그나마 한 사람도 안 쓴 이유가 이번에 밝혀진 겁니다.
현재 지방법원의 파산부(破産部)체제로 운영되는 법정관리가 전문성과 효율성 차원에서 파산법원 체제로 운영돼야 한다는 여론이 있습니다. 법정관리가 제도개선을 통해 화려한 패자부활전이 되는 날 우리 사회는 한층 건강해질 것입니다.
자유칼럼그룹 임종건 드라이펜 [2011.4.19]
(www.freecolumn.co.kr)